모종의 이유로 인해 어제 칼럼을 쓰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칼럼을 두 편이나 연재해야 한다. 다만 앞의 칼럼은 어제 날짜로 해서 발행하기로 한다. 블로그스팟의 특별한 기능 중 하나는 작성일을 과거로 지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 오늘 논하고 싶은 주제는... 그냥 나의 컴퓨터 역사와 관련된 얘기나 해볼까.
필자가 컴퓨터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접했을 때가... 아마 초등학교 2학년이었나. 1학년은 아니었던 것 같다. 20년도 지난 과거라서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아무튼 그때 재량활동이라는 명목으로 학교 컴퓨터실에 갈 기회가 있었다. 지금은 보기 힘들어진 CRT 모니터들 천지였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물론 거기 가서 하는 거라고는 한컴타자연습이나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열고 키보드만 두들기는 것 뿐이었다. 그래도 그런 시간 덕분에 컴퓨터 뿐 아니라 짤막하게 인터넷이 뭔지도 대충 체험할 수 있었다.
컴퓨터를 접하고 문화적 충격을 느낀 나는, 부모님을 졸라서 겨우 동네 컴퓨터집에서 90만원짜리 컴퓨터를 살 수가 있었다. CPU는 펜티엄2, 메모리는 128MB 였던가... 그렇게 큰 돈 들여서 장만했던 컴퓨터에는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이 설치된 채로 왔는데, 그 중 내가 아는 프로그램은 학교 컴퓨터실에도 있었던 '어린이 훈민정음2' 와 '한글97' 뿐이었다. 다른 프로그램들은 미지의 두려움으로 인해 손도 대지 못했다.
아무튼, 그렇게 거금을 들여 장만한 컴퓨터는 얼마 못 가서 부팅이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지금은 그런 문제가 발생할 시 메모리를 뺏다 꽂는 등의 조치를 취해서 이게 단순 접촉 불량인지, 아니면 부품 불량인지 확인할 수 있지만, 그때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컴퓨터 수리 지식도 없었고, 부모님도 컴퓨터에 대해선 까막눈이었다. 나는 '거금을 주고 산 컴퓨터를 망가뜨렸다' 라고 혼이 날까 두려워 이 문제가 발생하고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말을 꺼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부모님은 컴퓨터를 구입한 동네 컴퓨터 집에 출장A/S를 불렀던 것 같다. 수리기사는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려서 켜지지 않았다' 라는 식의 말을 한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에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은 컴퓨터가 어떻게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일까. 그냥 둘러댄 거겠지. 아무튼 수리를 마친 컴퓨터는 다시 부팅이 잘 되었다. 수리비는... 냈는지 안 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잘 작동되던 컴퓨터는 나중에 똑같은 문제로 또 고장이 났다. 이번에도 며칠이 지난 뒤에 겨우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렸다. 그때는 부모님이 동네 컴퓨터집이 아닌 동네 전파사에 출장A/S를 의뢰했다. 전파사 주인은 컴퓨터를 고칠 능력이 없는지 자기가 아는 컴퓨터 수리업자를 데리고 방문했다. 아무튼 그래서 컴퓨터가 다시 부팅이 되도록 수리는 했는데... 수리비와 출장비를 합쳐서 무려 5만원씩이나 받아먹었다. 아마 전파사 주인과 수리업자가 반반씩 나눠가졌을 것이다. 이때의 수리비용이 너무 충격적이었는지 부모님은 지금도 내가 컴퓨터 고장때문에 본체를 열고 뭔가 고치고 있으면 그때의 얘기를 꺼내곤 한다. 모르면 바가지 쓴다는 말과 함께.
이렇게 말썽많은 첫 컴퓨터는 훗날 새로운 컴퓨터로 교체하면서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케이스와 부품들은 집이 한 차례 이사를 하고 난 뒤에 사라졌다. 필자 또한 당시에 초등학교 저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비싼 수리비에 충격을 받았는지, 서점에서 'PC진단 문제해결 무작정 따라하기' 같은 책을 사서 그걸 정독하는 등 '다시는 컴퓨터 A/S 때문에 바가지를 먹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의 일 이후로, 나는 컴퓨터 고장이 발생하면 자체 해결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고, 컴퓨터 A/S를 맡긴 적은 그 뒤로 단 한 번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