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나라사랑카드' 라는 체크카드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비록 지금은 유효기간도 다 되어서 쓸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먼 훗날에 기억을 회상할 수 있는 증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나라사랑카드와 연결된 계좌는 사라졌다. 내 주거래은행은 신한은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계좌는 거래 내역이 없는 채로 장기간 방치되어서 거래중지계좌가 되었다. 처음에는 그 계좌를 살리려고 했는데... 살릴 방법이 거의 계좌를 신규 발급하는 수준으로 복잡했다. 무슨 재직증명서가 필요하다는 등 금융거래목적확인서를 내야 한다는 등... 내가 어딘가에 정규직으로 취업한 상황도 아니었고, 계좌를 살리기 위한 서류도 복잡했고, 심지어 은행 지점까지 방문해야 한다는 건 너무나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따라서 나는 신한은행 어플로 비대면 계좌를 새로 만들고, 거래중지계좌의 잔액은 새 계좌에 흡수하는 식으로 조치할 수 밖에 없었다.
새 계좌는 비대면으로 만들어진 계좌라서 그런지 '한도제한계좌1' 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신한은행의 한도제한계좌1은 ATM/온라인 뱅킹을 통해 송금할 수 있는 금액 한도가 하루에 30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 한도제한계좌2로 업그레이드 하면 150만원으로 폭이 늘어나지만, 그래봤자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또한, 한도제한계좌2로 업그레이드 하거나, 아예 한도제한계좌에서 벗어나려면 여전히 재직증명서 같은 각종 서류들이 필요하다. 서류를 다 갖추고 간다 해도 은행 측이 온갖 핑계를 대면서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까다로우니 그냥 포기하고 하루에 30만원 씩 쪼개기 송금을 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몇 년전에 '통장고시' 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었다. 보이스피싱인지 대포통장인지 하는 것들이 기승을 부리니, 은행 측이 통장 개설 시에 급여 수령 내역, 관리비·공과금 이체 내역 등 온갖 근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통장 개설이 마치 고시(高試)를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이 세태를 풍자했는데, 그 용어가 바로 '통장고시'다. 이렇게 통장 개설에 대한 불평이 계속 나오자 궁여지책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한도제한계좌' 제도다. 개설은 쉽게 해주는 대신 하루의 출금 한도를 막아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도를 틀어막는다고 해서 사기꾼들이 사기를 그만두겠는가. 보이스피싱은 지금도 여전한데 말이다. 결국 애꿎은 사람들만 까다로워진 통장 개설 방침, 답답한 한도 제한 정책의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23년 8월 초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 에서 거래한도 금액에 대한 상향 조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추진에 불과하므로 좀 더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겠지만, 뒤늦게라도 문제를 인식하는 정부부처가 나와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규제들은, 정작 규제 대상인 자들이 대상에서 빠지거나 요리조리 빈 틈으로 다 빠져나가고, 애꿎은 사람들만 그물에 걸려서 허우적거리는 케이스가 많이 있다. 이것은 위정자들이 제도나 법률을 만들 때 너무 경솔하게 임하고, 시행 후의 A/S 정신도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법은 이해관계의 충돌을 막고 조정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봐야 한다. 이것이 인간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생활에까지 지장을 초래하는 제약(制約)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