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감정의 쓰레기통 목적으로 쓰는 이유

 학교를 다니던 시절, 방학숙제로 가장 성가셨던 것을 꼽는다면 필자는 바로 '일기'를 꼽을 것이다. 솔직히 매일매일 어제와 다른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매일 일기를 쓴다해도 모두 비슷한 내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없었던 일을 꾸며내기에는 양심에 찔리기도 하고, 꾸며낼 상상력도 없었다. 그 시절에 썼던 일기장이 지금도 남아있더라면, 어떤 식으로 둘러댔는지 확인해볼 수 있을텐데 안타깝게도 소실되었다.

지금도 가끔가다 블로그에 일기를 쓰고 있다. 하루에 한번 씩 쓰지는 못하고, 계절별로 한번 씩 쓰는 수준이지만 일단은 일기라고 칭하겠다. 하지만 필자는 막상 일기를 쓴다고 해도, 과거에 썼던 일기는 거의 읽지 않는 타입이다. 나는 일기를 쓸 때,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내용들을 작성한 후에, 비공개 게시물로 저장하고 다시는 열어보지 않는다. 열어본다면 과거의 기억들이 다시 떠올라서 마음이 심란해질테니까... 어쩌면 나는 '감정의 쓰레기통' 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일기를 대하는 관념이 이렇다보니, 낭패를 본 일이 하나 있었다. 군대 얘기는 가급적 어디서도 꺼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짤막하게 언급을 해야겠다. '소중한 나의 병영일기'. 일명 소나기라는 것이 있다. 사실상 일기장이나 다름없는 것이지만, 뭔가 있어보이려고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 같다. 자대 배치를 받고 난 뒤, 나는 중대장 및 소대장, 분대장과의 면담을 거치게 되었다. 중대장과 소대장은 그럭저럭 무난했지만 문제는 분대장이었다. 분대장이 병사 분대장이 아닌 하사 분대장이었는데, 면담을 진행하면서 '나하고는 도저히 상성이 맞지 않는다'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한 연유는 여러가지 있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경박(輕薄)했다. 처음에는 나보다 대여섯살은 많은 줄 알았다. 그래서 나이로 텃새 부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다른 간부의 말을 듣고, 그가 나와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일도 나보다 고작 한 달 늦었다. 내가 군대에 늦게 입대한 거라면 감내라도 하겠지만, 만 20세에 갔으니 지극히 평균적인 시기였다. 

아무튼 필자는 분대장과의 면담이 끝나고, 그 충격을 고스란히 소나기에 적는 것으로 심정을 토로하였다. '감정의 쓰레기통' 으로 소나기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믿을 구석 없는 맞선임이 와서 뭐 힘든 일 없냐고 묻길래 나는 눈치도 없이 분대장과의 면담에서 생긴 일을 말했다. 적어도 맞선임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맞선임은 일러바치는 것 마냥 이를 분대장에게 보고하였고, 분대장은 화를 내며 나를 면담실로 호출하였다. 거기서 들었던 온갖 궤변들은 이제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거의 8년 전의 일이기도 하고, 내 기억 속에서 지우려고 그렇게 애썼기 때문이다.

그 일 이후 나는 소나기를 제출해야 했고, 분대장은 '많이 힘들었구나?' 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능글맞게 웃었다. 그 뒤로 나는 소나기에 일기를 쓰는 걸 그만두었고, '감정의 쓰레기통' 이 없어짐에 따라 내 머릿 속에는 '정신적 쓰레기' 들이 하나 둘씩 늘어갔다. 동기나 선임, 간부에게 상담한다고 해도 결국은 '의지박약'이란 결론으로 귀결되게 마련이니 그쪽은 처음부터 아예 기대를 접었다. 그렇게 나는 인간불신에 잠식되어 갔다. 그리고 지금도 그 여파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을 '감정의 쓰레기통' 으로 삼으면 주변 사람마저 부정적 의식에 휩싸이게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일기를 쓰는 것으로 감정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게 나의 삶의 방식이다. 마치 단물 빠진 껌을 껌종이에 싸서 버리는 것처럼, 먼 훗날에도 '읽을 일 없는 일기'를, 나는 계속 써내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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