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소는 회초리가 아니다

필자는 음악을 싫어하지 않지만, 음악 교과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수행평가로 악기를 연주해야 할 때는 너무나도 숨이 콱 막히는 심정이었다. 장구나 실로폰 같이 두드리기만 하면 되는 악기는 그나마 좀 나았는데, 리코더 같은 관악기를 연주할 때는 긴장되어서 이빨에 딱딱 부딪히거나, 손가락으로 구멍을 제대로 막지 못해서 삑사리가 나는 등 여러가지로 필자를 괴롭게 하였다. 여기에 제대로 못 부른다는 선생의 구박까지 들으면 아주 금상첨화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리코더를 뛰어넘는 최악의 관악기가 있었다. 바로 '단소' 였다. 아무리 불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애초에 숨을 어떻게 넣어줘야 소리가 나는 것인지 짐작조차도 가지 않았다. 잘하는 애들은 잘 하던데, 왜 나는 못 하는 건가... 하고 패배감을 불러 일으킨 악기다.
단소는 악기지만, 다른 용도로도 쓰였다. 지금은 학교 환경에서 체벌이 많이 근절된 상태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선생들은 회초리 비스무리한 물건을 가지고 다녔다. 남교사 여교사 모두가 말이다. 숙제를 안 해오면 당연히 맞는 것이었고,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단소'는 기다란 막대기니까 회초리 대용으로도 아주 적합한 것이었다. 그러한 단소의 잘못된 이용 행태들이 필자에게는 더욱 단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었다.
최근 들어 학부모의 갑질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교사들을 다룬 뉴스가 많이 나오고 있다. 예전의 학교 환경만 알던 내가 보기엔 경천동지할 일이다. 그러나 더 기가 막힌 일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들고 나온다는 게 '교권 강화'나 '학생인권조례 폐지'라는 것이다. 그러한 논의는 결국 '체벌 부활'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참으로 목불인견(目不忍見) 이다. 때려도 말을 안 듣는 학생은 대체 어떻게 할 건가. 교실에 긴장감과 공포감만 조성시키는 꼴이다. 그리고 학생에 대한 체벌과 학부모의 갑질은 아무런 연관도 없다.
위에서 내가 학창시절을 너무 야박하게 서술한 면이 있는데, 선생들이 전부 다 체벌에 환장한 것은 아니다. 좋은 선생들도 어느 정도는 있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회초리로 맞는다는게 너무나도 당연시 되던 때라서, 아무도 그런 행위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최대한 안 맞을려고 숙제든 준비물이든 시험 점수든... 빠져나갈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덜 맞았을 뿐이지. 맞을 건 맞게 되어 있었다.
요즘은 '이지단소' 라고 해서, 단소의 소리를 좀 더 쉽게 낼 수 있는 보조기구가 개발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걸 써본 적이 없으니 정말로 소리내기가 쉬워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도구 덕분에 아이들이 좀 더 단소 소리를 쉽게 낼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악기 연주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게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학생을 구원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지단소가 한 20년 일찍 발명되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필자가 단소에 대해 갖는 비호감이 약간은 줄어들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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