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번호 127번 시절의 신설동역 사진에 대한 회상

1호선 신설동역 역번호가 127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는 126번이지만, 동묘앞역이 개업하기 전까지는 127번이었다. 1호선 동묘앞역은 2005년 12월 21일에 개업했으니, 내 블로그의 프로필 사진은 그때보다 전에 찍은 것이라고 대강 유추가 가능하다.
지금은 스마트폰의 카메라 화질이 디지털 카메라를 뛰어넘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2005년 당시의 카메라는 일명 '똑딱이' 라고 하는 컴팩트 카메라와, 쇠퇴해가는 필름 카메라가 주류였다. 휴대폰 쪽은 겨우 카메라 모듈이 탑재되어 '카메라폰' 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한 태동기였다. 당시 부모님의 휴대폰은 LG-KV1300 이라는 모델이었는데, 그 휴대폰은 신기하게도 카메라 렌즈를 앞 뒤로 회전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진 촬영뿐만 아니라, 셀카도 가능한 시대를 앞선 모델이었다.
비록 부모님의 휴대폰이었지만, 부모님은 별로 카메라 기능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마음껏 휴대폰으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찍은 사진은 주로 지하철 역명판이었다. 지금은 지하철과 철도에 별 감흥이 없지만, 그래도 새로운 노선이나 신규 역이 개통될 때는 설렌다. 아무튼 그렇게 찍은 사진의 해상도는 320x240 또는 640x480 밖에 되지 않아서 지금 기준으로 볼 땐 저화질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진들에는 어렸을 적 나의 추억들이 묻혀져 있다. 그 추억은 결코 저품질이라 치부할 수 없다.
그런 식으로 약 18년 전, 필자가 휴대폰으로 한 땀 한 땀 찍었던 사진들 대부분은 다행히도 컴퓨터 상에서 계속 볼 수가 있다. 당시에 '멀티메일' 이라는, 사진을 자신의 이메일 주소로 보낼 수 있는 체계가 있었다. MMS와 비슷한 개념이다. 놀랍게도 그 당시의 내가, 내 이메일 주소로 대부분의 사진을 첨부해서 보내놓았다. 그런 선견지명 덕분에, 현재 필자의 티스토리 및 여기 블로그스팟의 프로필 사진으로 '역번호 127번 시절의 신설동역' 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LG-KV1300 모델은 버리지 않은 채로 서랍 한 구석에 깊이 잠들어 있다. 이제 충전기 케이블을 꽂지 않으면 켜지지도 않는다. 이 기기에는 사진 뿐만 아니라, 몇 초짜리의 동영상도, 정보이용료에 데이터통화료라는 통신사의 술수를 감내하고 다운로드 받은 게임들도 수록되어 있다. 몇 년 전 인터넷에서 게임이 탑재되어 있는 중고 피처폰을 파는 것을 보았다. 판매도 수요가 있어야 파는 것이니, 당시의 추억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분명 있다는 증거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 그 시기는 어중간하게 디지털화 되다 보니 지금 이 시대에선 접근하기 힘든 부분이 너무 많다. 그로 인해 유실된 자료들도 수두룩하다. 기억 속에만 남아있고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들. 영원히 그 자리에 존재할 것 같으면서도 어느 새 사라져버린 데이터들. 디지털 시대는, 역설적이게도 자료의 소실(消失)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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