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도에서 엿볼 수 있는 자신감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환자의 용태에 관한 문제.
1934년 7월 28일, 조선중앙일보에 게재된 이상(李箱)의 오감도(烏瞰圖) 시제4호의 제목이다. 내용은 그저 숫자들이 거울에 비춘 것처럼 반전되어 있었을 뿐이다. 당시의 독자들은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이냐며 항의를 하기에 바빴고, 결국 15호를 끝으로 연재는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오감도는 먼 훗날, 한국 난해시(難解詩)의 대표 작품이 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처럼 작성 당시에는 독자들에게 무시 당하고, 외면 받고, 비난만 듣다가, 나중에 가서야 그 진면목이 발견되어 재평가를 받는 작품들이 있다. 

갑자기 필자가 왜 이상의 오감도에 주목하게 됐냐면, 사실 칼럼 소재도 점점 떨어져가고 있어서 힘든 데다가, 이 블로그스팟에 쓴 칼럼들이 과연 먼 훗날에도 읽을만한 글로 인정받게 될지, 아니면 그저 애드센스 승인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로 끝나게 될 것인지... 복잡한 심정이 들어서였기 때문이다. 비록 겉으로는 '아무말 대잔치'나 '1000자 채우기'라는 식으로 애써 평가 절하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 수준의 분량으로 나의 주관적 생각을 표현하는 글은 예전에도 별로 쓰지 않았다. 아, 다시 생각해보니 전혀 쓰지 않았다. 티스토리 블로그의 글 대부분도 무언가에 대한 설명 위주로 썼으니까 말이다. 괜히 내 주관적인 입장을 드러냈다가, 속 된 말로 '어그로'가 끌리면 난처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오감도는 앞에서 언급한 시제4호 말고도, 나머지 시제 또한 읽는 것뿐만 아니라 신문 지면에 새겨진 활자들을 보는 것만 해도 정신이 아스트랄해질 정도다. 그러한 시를 '이상'과 '조선중앙일보'는 당당하게 독자들 앞에 공개하였다. 비록 연재는 조기중단 됐으나, 이상은 자기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조선중앙일보 또한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15호까지 지면에 게재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현 사회는 칭찬과 공감보다는, 비난과 비공감만 난무하고 있다. 예전과 달리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이 분화(分化)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를 인정하지 않고 존중하지도 않는 세태(世態)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 오감도 같은 난해시가 나왔다면? 외면 당하거나 약 100년 전처럼 똑같이 비난만 받을 게 뻔하다. '이딴 걸 시라고 썼냐' 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쓸 수 밖에 없다. 남의 입맛에 맞춰 사는 것은 피곤하고 지긋지긋한 것이다. 한번 맞추기 시작하면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라는 비관적인 단어만이 머릿속을 맴돌게 될 뿐이다. 도덕 관념에 위반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글을 써야 한다. 그 누구도 표현할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이 나타낼 수 있는 고유한 글을 써야 한다. 인공지능 같은 인간의 급조물이 전혀 따라하지 못할 글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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