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 5월에 발표한 '고립·은둔 청년 현황과 지원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19-34세의 청년 인구 중 고립 비율은 2021년 기준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그럼 2023년의 실제 비율은 어떨까. 왠지 이 통계보다 좀 더 높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해당 비율을 인구 수로 환산하면 대략 54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히키코모리 만으로도 도시 하나를 만들 수준이라는 것이다. 상당한 규모다. 과연 이들은 왜 고립을 선택한 것일까.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히키코모리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 댓글란은 그저 '의지가 박약해서' '게을러서' '부모 재산으로 먹고 살 수 있어서' 라는 비우호적인 댓글이 상당수다. 물론 일부는 정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잠깐. 갑자기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어졌다.
...어떤 히키코모리가 있었다. 그의 방은 항상 어두웠다. 히키코모리는 더 이상 이런 비참한 삶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세상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했던 것보다 잔혹했다. 아르바이트 같은 단기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굉장한 용기를 요구했다. 떨어지면 나 자신이 열등해서 떨어졌다는 비참함이 몰려올 것이고, 붙는다면 그것대로 앞으로 어떻게 처신을 해야 짤리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사장이나 다른 동료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끝없는 고민이 주렁주렁 머릿속을 파고들기 때문이었다.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대충 쉬워보이는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히키코모리이기 때문에 이력은 별 볼일 없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괜히 비웃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할 친구도 없는 히키코모리의 입장에선 전화를 받는 것 또한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전화 올 일이 거의 없는, 그저 인터넷 상 본인인증 목적으로 개통한 히키코모리의 스마트폰에 전화가 왔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일단 통화 버튼을 눌렀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였다. 대충 '네' 같은 짧은 응답을 위주로 대답한 히키코모리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마음은 더 피곤해졌다. 면접에서는 대체 무슨 질문을 하는 것일까. 내 이력을 보고 '당신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습니까' 같은 질문을 하면 나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하는 것일까. 정장 한 벌도 없는데 그냥 아무 옷이나 입고 가도 상관없을까. 갔다가 괜히 기분 나쁠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닐까하고... 히키코모리는 그렇게 잠을 설쳤다. 그리고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사장은 이력서를 보며 젊은 사람이 이렇게 살면 안된다느니 뭐 이런 소리를 하며 혀를 끌끌 차더니, 사람 하나 살린다는 심정으로 고용해줄테니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하였다. 히키코모리는 자신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 같은 비참한 심정이었지만 어쨌든 수입이 생기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귀가를 하였다. 비록 버거운 세상이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일주일만에 깨졌다. 오랜 은둔 생활에 익숙해진 히키코모리는 움직임도 굼떴고, 여러가지 잔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화가 난 사장은 너는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냐고 윽박 지르며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라고 하였다. 히키코모리의 마음 속에 큰 대못이 박혔다. '나는 아르바이트 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쓰레기일 뿐이야...' 힘든 일이 있어도 평생 술 한 잔, 담배 한 개비도 절대 피우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 히키코모리였지만, 오늘같은 날은 너무나도 마음을 달랠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인터넷의 어떤 매체도 히키코모리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하였다. 히키코모리는 울적한 심정으로 잠이 들었다. 그의 방은 항상 어두웠지만, 이번엔 그 어느 때보다 훨씬 어두워보였다.
...어떤가. 물론 이 시나리오도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담아내지는 못 했을 것이다. 시나리오 같은 일을 겪었다고 해도 다시 용기를 내서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히키코모리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비중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상당수는 시나리오와 같은 일을 겪게 될게 뻔해서, 이미 시나리오와 같은 일을 겪어봐서, 그래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걸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 사회는 획일화된 인간상을 요구하고, 여기에 뒤떨어진 자들은 모두 이레귤러(Irregular), 비정상적인 것들로 치부하고 있다. 정치의 극단화가 사회문화적 극단화로 전염되면서 그러한 현상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심지어는 히키코모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고 가기까지 한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 그래서 있는 거라고는 인력자원 뿐인 나라. 그런 나라가 인력자원들을 함부로 다루고 있다. 모든 자원이 없어져봐야 그 중요성을 알겠는가. 시대가 유감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