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인터넷에서 실명인증을 할 때에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한 뒤 입력한 값을 신용정보 회사의 서버의 정보와 대조해서 일치하면 통과가 되는 그런 식이었다. 그러다보니 회사에 정보가 입력되지 않으면 인증이 통과되지 않는 그런 문제도 있었고, 자녀가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외워두었다가 인증 수단으로 써먹는 그런 잔꾀도 횡행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온라인 상의 실명인증은 기존의 주민등록번호 인증 방식이 아닌 휴대폰 인증으로 바뀌게 되었다. 본인 명의의 휴대폰 번호에 인증번호가 전송되고, 그걸 입력하면 인증이 완료되는 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이 인증 방식은 본인 명의의 휴대폰 번호가 없는 사람들에겐 큰 장벽이 된다. 신용 문제 등으로 인해 휴대폰 번호를 개설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나, 가족의 명의로 휴대폰을 쓰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공공기관에서 발급한다는 아이핀(i-PIN) 또한 휴대폰 인증 또는 금융인증서, 공동인증서가 있어야만 발급이 가능하므로, 만약 인터넷·스마트폰 뱅킹을 하지 않는 경우엔 이 또한 발급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러한 행태가 오히려 통신사를 준공공기관화 취급한다는 것이다. 비록 예전엔 '한국통신'이라고 국가기간 통신사가 있긴 했으나, 지금은 'KT'로 민영화된 상태다. 여전히 정부 입김이 닿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 겉으로는 민영회사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인터넷과 이동전화가 보급되고,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국민의 통신 의존도는... 사실상 통신 서비스에 가입되지 않으면 세상을 살아가기 어려울 정도의 환경이 되었다. 예전에도 집전화처럼 통신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욱 통신사에 대한 서비스 의존도가 심화되어 간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면 통신사 또한 무한한 책임감을 가지고 서비스를 실시해야 하는데, 필자가 보기엔 현재의 대한민국 통신 3사에게 그러한 책임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기가인터넷의 속도에 제한을 건다거나, 망사용료 논란, 5G 품질 문제 등 통신사의 행태는 국민의 생활을 책임지는 모습이 아닌, 그저 돈에 급급한 일반적인 회사에 불과하다. 그러한 자들에게 실명인증 같은 개인정보 확인 임무를 맡긴다는 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인터넷 상의 본인 인증 수단으로써 휴대폰 인증 말고는 다른 묘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통신사의 행태를 비판하지만, 정작 통신사가 깔아놓은 방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용자의 입장을 이미 오래 전부터 파악한 통신3사들은 담합과 배짱 장사에 치중하고 있다. '그래서 어쩔건데. 니가 뭘 할 수 있는데.' 라면서 말이다. 알뜰폰은 기존 통신사의 회선을 임대해서 쓰는 것이니 결국 통신사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제4이통사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으나 막대한 비용과 텃새를 감당할 도전자는 보이지 않고, 설령 나타났다 해도 기존 통신사들과의 경쟁이 아닌 유착으로 이용자 입장에서는 말짱 도루묵이 될 가능성도 있다. 고인 물이 조성되기 딱 좋은 환경. 대한민국의 통신 시장은 고인 물처럼 썩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