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안 보고 산 지도 얼마나 오래됐는지 모르겠다. '무한도전'이 종영되고 난 뒤 필자는 딱히 챙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없다. 기껏해야 뉴스 채널의 LIVE 중계정도 뿐이고, 예능 프로그램과는 담 쌓은지가 오래됐다. 솔직히 무엇에 재미를 느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름 무한도전의 후신이라고 간주되는 '놀면 뭐하니'도 나는 한 번도 진득하게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드라마는 어떠한가. 필자가 진득하게 본 드라마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것도 각시탈이나 정도전, 징비록... 뭐 이런 사극들 위주였다. 그 외에는 다른 사람이 시청하는 걸 어깨 너머로 넘겨다 보는 것 뿐인데, 그런 드라마는 이상하게도 감정적으로 격한 반응을 표출하는 장면이 꼭 존재하였다. 과거에 '막장 드라마' 라고 해서 스토리가 산으로 가는 드라마들을 꼬집는 단어가 있었는데, 자꾸만 그 단어가 생각난다.
필자는 그런 격한 장면들이 시청자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조성하는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물론 드라마가 정말로 그러한 작용을 하는지 아닌지는 연구 보고서를 본 적이 없으니 확답할 수 없다. 그러나 게임 마저도 '게임중독' 이라는 소리를 하며 질병으로 취급하는 시대에, 드라마 또한 '드라마중독' 이라고 치부하지 못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드라마 속에서 보여지고 있는 배경들은 실제 생활로 따진다면 금수저들의 환경에 가깝다. 치정 싸움 같은 것도 생활이 풍족하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당장 먹고 살기에 급급하면 그런 걸 따질 여유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흙수저의 삶을 처절하게 다룬 드라마를 편성하게 되면 그 드라마는 얼마 못 가 조기종영되고 말 것이다. 시청률이 낮기 때문이다.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처한 삶에서 도피하기 위해 자신보다 훨씬 잘 사는 금수저들의 삶을 보면서 마음에 위로를 얻는 것.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드라마의 의미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드라마 속의 환경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일 뿐이다. 현재 한국의 공중파에서 보여주는 드라마들은 단순히 현실 도피를 해주는 것을 넘어서, 시청자에게 패배주의와 암울감을 심어주고 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대부분 잘 살고, 잘 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는? 못 살고 못 난 자 아닌가. 나는 결코 드라마 속 인물들 처럼 잘 살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식의 좌절감만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머리를 지배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게 될 수 밖에 없고, 그러한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적으로 큰 손해다. 이런 불편한 진실 때문에, 필자는 드라마를 태생적으로 기피하게 된 것이다. 그럼 애니메이션은 어떨까. 애니메이션 또한 꿈과 희망따위 없는 절망적인 작품도 있으나, 대다수의 작품은 나름대로 희망의 메시지. 긍정의 메시지를 준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는 금수저들의 세상만 보여주고, 교훈 따위는 밥 말아먹은지 오래 되었으며, 소리만 버럭버럭 지르는 등 격한 감정만 표출하는 데에 급급하고, 시청자들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되어 간다. 게임에 중독 잣대를 들이댈 시간에, 애니메이션에 대해 오타쿠 타령을 할 시간에, 드라마부터 사회에 부정적인 요인을 조성하지 않는지 검증하고 전면적인 개혁을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기득권이나 다름없는 공중파와 드라마 작가들, 이미 '한국식 드라마'에 특화된 시청자층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질 리가 만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