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112에 신고를 했던 이유

(출처 : 2021년도 경찰통계연보)


내가 살면서 112에 전화한 적은 거의 없다. 있었던 것도 2020년 딱 한 해 뿐이었고, 그 뒤로 지금까지는 한 번도 없었다. 신고 이유 또한 '밖에서 일어난 싸움'을 좀 제지해 달라는 것뿐이었다.

그럼 '밖에서 일어난 싸움'이란 무엇인지 독자의 이해를 위해 조금 상세하게 서술하도록 하겠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이런 글을 써도 될까 염려했지만, 어차피 보는 사람도 거의 없을 뿐더러 이런 일은 전국 각지에서 흔히 일어나는 유형이니까 쓰기로 결정했다. 칼럼에 쓸만한 소재도 딱히 없고 말이다.

때는 2020년, 옆 집 반지하에 한 가족이 살았었다. 남편은 어떤 직업인지 잘 모르겠는데 주중에는 일 때문에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주말에만 집에 오는 그런 타입이었다. 아내는 그냥 전업주부였고, 자식은 독립해서 사는 것 같았다. 나이는 내가 두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남편과 아내 둘 다 50~60대 쯤 됐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가 외로움을 탔는지, '뒷 집의 뒷 집의 옆 집'에 사는 노인네와 좋아지내기 시작하였다. 어떤 연유로 교제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이가 깊어졌는지 그 노인네는 아예 틈만 나면 옆 집 반지하의 문을 두드리는 등 자꾸만 아내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 노인네는 술을 쳐먹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야! 너 이리 와봐~' 같은 시비를 거는 등 이미 문제의 조짐이 많이 보였던 자였다. 술을 안 먹은 상태면 그저 그런데, 술을 먹으면 꼭 개처럼 변하는 타입의 사람들이 있다. 그 노인네는 그런 타입이었다.

사실 그런 자는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괜히 연관되서 좋을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가족 중 한 명은 그러지 못했다. 늙으니 수다 귀신이라도 붙었는지, 아버지는 옛날과 달리 자꾸 집 밖을 돌아다니면서 동네 주민하고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되었다. 좋게 말하면 사교성이 높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점잖지 못하고 입이 가벼운 거라 말할 수 있겠다. 아버지와 그 노인네의 악연은 위에서 언급한 '야! 너 이리 와봐~' 에서 시작되었다. 하도 집 밖을 돌아다니니 그 노인네의 포착망에 걸려든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도 한 성깔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혀 위축되지 않고 그 노인네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옆 집 반지하의 아내와 노인네가 서로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아버지는 반지하의 남편에게 이 사실을 폭로했다. 그리고 다음날, 남편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아내 뿐 아니라 노인네까지 아침부터 우리 집 앞에서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노인네는 반지하 아내가 자기 '친척 여동생' 이라는 아무도 믿지 못할 변명을 해대고, 아내는 왜 그걸 남편에게 일러바치냐면서 양쪽에서 항의를 해대기 급급하였다. 아버지는 맞받아치면서 양쪽의 대립 상태는 계속되었고, 말싸움은 어느새 노인네와 아버지의 멱살잡이식 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 필자는 그때 처음으로 112에 신고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경찰이 출동한다고 해서 노인네가 저속한 행동을 그만둘 리가 없었다. 그 노인네는 머리에 네비게이션이라도 달렸는지 경찰의 도착이 임박했다 싶으면 '너 조심해!' 라는 마치 애니메이션의 악역들이 줄행랑 칠때나 할 법한 대사를 내뱉으며 자기 집으로 튀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나 경찰이 없을때는 다시 집 밖으로 나와서 시비를 걸거나 동네방네 떠나갈 듯 고성방가(高聲放歌)로 헛소리를 해대기 바빴다.

이러한 행위가 계속되니 어머니의 불안감은 갈 수록 심화되었고, 결국 보다 못한 나는 노인네의 고성방가나 싸움 현장을 녹음한 파일을 첨부하여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기도 하였다. 다만 경찰서 담당관은 경범죄로 범칙금을 부과해버리면 아무래도 이웃이다 보니 감정의 골이 더욱 상할 수 있다고 하였다. 내가 봐도 과태료를 부과해봤자 별로 효과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조치는 경찰이 노인네에게 다시 한번 행동에 주의를 요구하도록 촉구하고 순찰을 강화하는 편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는 집 주변에 CCTV도 설치되었다.

그러나 노인네는 그 뒤로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였고, 이 때문에 필자는 추가로 112에 몇 차례 더 신고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노인네는 아버지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알아차렸는지, 해가 바뀐 2021년 봄에 갑자기 '이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라는 말을 하며 평화협정을 제의하였다. 이 뒤로 노인네는 별로 아버지에게 시비를 걸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가끔가다 집 뒤에서 노인네 특유의 꼬랑꼬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직도 술 먹으면 개가 되어서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걸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노인네와 옆 집 반지하 아내의 밀회는 결국 아내의 자식에게도 발각되고 말았다. 자식이 이 둘을 떼어놓으려고 손을 썼는지, 그 가족은 결국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러나 한번 씌인 콩깍지는 벗기기 힘들다. 이사를 갔음에도 불구하고, 이젠 아내가 직접 노인네의 집에 방문한다고 한다. 하지만 평화협정을 맺었으니 더 이상 우리가 알 바 아니다.

이것이 2020년과 2021년에 필자의 집 주변에서 벌어진 '밖에서 일어난 싸움'이다. 재미있었는가? 이렇게 블로그에 서술하면서 돌이켜보면 나름 흥미로운 주제 같지만, 당시에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아무런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필자에게 그런 추태는 살면서 처음 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에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내 머릿속 경찰에 대한 신뢰감은 크게 떨어졌다. 동네에서 벌어지는 불량한 행동을 단속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진 것이다.

필자는 '상급지' 같은 그런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급지로 취급되는 동네도 안 좋은 일은 벌어지게 되어있는데, 집값·땅값이나 학군만으로 어떻게 동네의 급을 나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이 왜 상급지 쪽을 더 선호하는지는 잘 알겠다. 적어도 필자가 보고 겪은 '밖에서 일어난 싸움' 같은 일이 벌어질 확률이 조금이라도 낮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불편한 진실이지만, 서민층 지역의 경찰보다 중산층·상류층 지역의 경찰이 더 신경 써서 치안 유지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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