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치의 끝과 치지직의 시작을 보면서


 2023년 겨울, 한국의 인터넷 방송 플랫폼은 마치 IMF 외환위기를 맞은 것처럼 어수선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다만 '인터넷 방송 플랫폼' 이라는 단어로 말하기에는 좀 거리감이 있다. 왜냐하면 사실상 모든 문제는 '트위치'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2월 6일, 트위치는 공지사항과 CEO의 방송을 통해 한국 서비스 종료를 발표하였다. 내년 2월 27일부터 한국의 트위치 스트리머들은 비트나 정기구독 등의 수익 창출을 할 수 없게 된다. 또한 공식 발표 내용에는 없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한국 IP의 송출이나 시청에 관련해서도 무언가 제약이 있을 거라 의심되는 상황이다. 물론 제약이 걸린다 해도 VPN을 사용하면 이를 손쉽게 우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방송할 가치가 있는지도 의문이고, 철수한 트위치에 한국인 시청자들이 과연 얼마나 잔존할 지도 알 수 없다. 제약이 걸리든 안 걸리든 내년 3월 이후 트위치의 한국 시청자 수는 당연히 폭락하게 될 것이다. 수요가 없는 곳에 공급을 해봤자 얻는 것이 없으니, 트위치 스트리머들은 방송을 접지 않는 이상 타 방송 플랫폼으로 이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트위치의 빈 자리를 노리고 있는 방송 플랫폼은 여러 곳이 있지만, 대표적으로는 아프리카TV와 네이버의 치지직이 있다. 아프리카TV는 최근 '트위치 웰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트위치 아이디를 아프리카TV에 연동시키면 베스트 BJ의 조건인 방송시간 수의 일부를 인정하는 등, 스트리머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트위치 시청자 층은 과거 2016년 10월에 벌어진 일명 '아프리카TV 갑질 논란' (엑소더스 사건) 으로 인해 아프리카TV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 않다. 이때문에 트위치가 화질을 720p로 제한하고, 한국 IP의 다시보기 시청·생성 금지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TV로 이전하는 시청자 층은 지금까지 그리 많지 않았다.

네이버의 치지직은 12월 6일부터 베타 테스트 신청을 받기 시작했고, 19일부터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치지직은 1080p와 다시보기 기능의 복귀, 유료 후원 아이템 '치즈' 등 전반적으로 트위치의 기능을 모두 도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트위치의 시청자 층은 대부분 본인이 시청하는 스트리머가 치지직으로 가기를 원하는 눈치다. 필자 또한 치지직에 채널 페이지를 만들어놓은 상태다. 비록 베타 테스트 신청 기준에 미흡하여 스트리밍 테스트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필자처럼 팔로워가 100명도 안되는 하꼬 스트리머들은 그저 정식 오픈이 될 때까지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조금 있으면 치지직이 베타 테스트를 시작한지 일주일 째가 된다. '베타'라는 점을 감안하고, 트위치의 한국 서비스 종료에 맞춰서 정식 오픈을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는 상황에 비추어 봤을때, 나름대로 노력했단 건 알 수 있다. 하지만 '베타'라고 해서 있는 문제점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표적인 것이 '치즈'를 후원받을 수 있는 '프로' 등급이 되면 동시 송출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아프리카TV는 동시 송출이 가능한 일반 BJ도 별풍선 후원을 받을 수 있다. 그저 수수료만 더 많이 들 뿐이다. 그 외에는 베타 테스트 신청 기준에 대해서 자세히 논하고 싶다. 팔로워 1만명이라는 수치는 대체 어떻게 정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차피 신청서 접수 후 또 심사를 거쳐서 베타 자격을 부여하는 것 아닌가? 조건을 달성했다고 무조건 주는 게 아니지 않은가. 굳이 그런 구체적 수치를 드러내서 일부 하꼬 스트리머들이 '품앗이' 라는 명목으로 팔로워 올려주기 작업을 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이는 마치 티스토리에서 맞구독·댓글을 요구하는 행위와 매우 비슷하다. 살다살다 방송 플랫폼에서까지 이런 행위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네이버는 그저 하꼬 스트리머들은 나중에 정식 오픈 때 들어오면 된다는 안일한 사고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하꼬 스트리머들이 트래픽 낭비만 할 뿐이니 방송을 접어야 된다는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그러나 나는 하꼬 스트리머가 일종의 '식물성 플랑크톤'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바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하는 등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생물들이다. 이들이 줄어들면 당연히 바다 생태계에 큰 악영향을 준다.

치지직은 현재 '자낳대' 라는 이벤트가 진행중이며, 해당 이벤트에 참가하는 스트리머들은 거의 베타 자격을 얻은 상태다. 하지만 그들이 치지직에서 스트리밍하는 게임들은 태반이 '리그 오브 레전드'다. 다른 게임을 보고 싶어하는 시청자들에겐 아직까지 치지직의 채널 다양성은 너무나도 부족하다. 필자 또한 베타 출시 당일에만 보았고 그 뒤로는 별로 볼 생각이 안 든다. 만약 다른 게임을 스트리밍하고 있는 하꼬 스트리머들이 많았다면 다양성이 보장돼서 치지직 외부로 다시 시청자 층이 이탈하는 경우를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독과점의 폐해는 크다. 당장 트위치가 한국 철수라는 충격적인 결정을 내린 이유도 '망 사용료' 라는 통신3사의 갑질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치지직이 성공하지 못하면 국내 인터넷 방송 플랫폼은 아프리카TV가 사실상 다시 독점을 하게 된다. 유튜브 스트리밍은 빛 좋은 개살구나 다름없고, KICK은 미래가 불투명하니, 소거법을 적용하면 아프리카TV 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버미육 스트리밍을 하고 있는 필자에겐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선택지다.

한두 달은 짧은 기간 같아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다. 네이버가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에 안주해서 '부자 몸 조심'만 하고 있으면 큰 코 다칠 수 있다. 치지직은 스트리머·시청자 유치에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아무 스트리머나 받다가 사고가 날까봐 걱정하는 거라면, 차라리 베타 때 일어나는 게 낫다. 적어도 '베타니까 괜찮아'라는 우호적 여론이 있고, 정식 서비스 때의 반면교사로 삼아도 되니까 말이다.

현재 치지직이 보여주고 있는 답답한 행보에 구구절절 2000자 가량의 글을 써봤다. 이 글은 아무도 읽을 필요가 없다. 정답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건 그냥 써본 글이다. 망초칼럼은 원래 그렇게 쓰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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