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통장에 찍힌 이자와 세금때문에 내 기분은 잡치고 말았다.

종이통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월말 혹은 연말 즈음에 '총이자·소득세·지방세' 뭐 이런 문구를 많이 접해봤을 것이다. 어차피 필자는 스마트폰으로 은행 업무를 처리하므로, 종이통장은 1년에 한번씩 달력 핑계로 정리할때 말고는 별로 볼 일이 없다. 따라서 이자나 세금이 얼마인지도 일일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확인한다해도 몇 백원 몇 십원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러한 수치들이 어떻게 되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런 수치에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필자가 아닌 주변인물이 주가 되는 이야기다. 여기서는 그냥 A와 B로 칭하도록 하겠다.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는다면 A와 B가 필자와 무슨 관계인지 대충 유추가 가능하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B는 2010년대 초, 은행 직원이 '무슨 이자가 지금 통장보다 더 잘 붙는 통장이 있네 뭐네' 하는 판촉에 시달리다가 보통예금 통장을 하나 개설한다. 다만 명의는 B가 아닌 A의 명의고, A의 기존 통장에서 절반 혹은 2/3 정도의 자금이 새로운 보통예금 통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A의 허가가 있었는지는 내가 알지 못한다. 다만 통장을 개설하는 것이니 본인의 허가가 있었을 거라고 예상한다.

새로 개설된 통장은 약 1~2년간 생활비·공과금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다가 언제부터인지 다시 예전의 보통예금 통장을 사용하면서 사실상 장롱통장이 되어버렸다. 장롱통장이 된 뒤로는 집주인의 전세금 인상때문에 한 번 인출한 것 말고는 지금까지 해당 통장에 손을 댄 내역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이자와 소득세·지방세 내역은 계속 종이통장에 차곡차곡 찍히고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그동안 아무 신경도 쓰지 않던 A가 갑자기 주변인에게 이상한 소리라도 들었는지 장롱통장에 잔고는 얼마나 되는지, 이자는 얼마나 붙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B는 당황했는지 설명 도중 '이자는 (소득세·지방세를) 빼고 준다' 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A는 '왜 장롱통장에서 이자를 빼냐(왜 이자를 생활비로 찾냐 또는 왜 이자를 인출해서 그걸로 소득세·지방세를 납부하냐)' 라는 말로 곡해해서 알아듣고 왜 통장 두 곳에서 돈을 찾냐면서 그럴거면 한 쪽 통장으로 통합하라는 식의 주장을 해대는 것이다. 글로 표현하니 좀 상황전달이 잘 안되는 것 같은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A의 장롱통장에 있던 잔고로 B가 몰래 주식에 투자해서 날려먹은 게 발각된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필자 또한 혼란스러운 분위기로 인해 'A가 통장이 2개면 세금이 2배로 나간다고 착각하고 있다. 세금 부과를 손해처럼 여기고 있다.' 라는 오해를 하였고, B를 마치 돈을 흥청망청 쓴 역적처럼 취급하는 것에 격분해서 A와 잠시나마 언쟁을 벌어기도 하였다. 그 후 장롱통장의 실제 인출 내역이 위에서 말한 전세금 인상 말고는 없었다는 것이 증명되면서 격앙된 분위기는 급속도로 수그러들었다. A는 'B가 통장 두 곳에서 돈을 빼서 쓴다는 식으로 말을 잘못해서 그렇다'는 입장이고, B는 'A는 내가 이자로 들어온 돈을 인출해서 소득세·지방세를 납부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필자의 생각은... '망할 집구석은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대충 눈대중으로 봤을때, 장롱통장의 월별 총이자는 많아봤자 1~2만원 남짓이었다. 보통예금 통장이라 이율이 높지도 않다. 그리고 이자에 부과된 소득세·지방세는 합쳐서 고작 몇천원 남짓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애초에 그런 건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이자보다 세금이 더 나가면 모르겠는데, 쥐꼬리만한 이자로도 충당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그럼 이 문제는 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B가 설명을 제대로 못해서인가? A가 멋대로 곡해해서 그런가? 아니면 또 다른 오해를 한 필자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통장에 매월 차곡차곡 찍히는 이자와 세금 내역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쥐꼬리만한 수준에 불과한데 괜히 오해나 불러일으키고 말이야... 아, 그리고 쓸데없는 걸 권유한 은행원도 나쁜 게 틀림없다.

어쨌든 위에서 말한대로, 이 집은 망할 집구석이라서 별의 별 것이 불화의 소재로 쓰이게 된다. 하지만 내가 가장 혼란스러운 점이 있다. 그것은 1~2시간 정도 지나면 마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분위기가 평소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계속 긴장된 분위기보다는 낫지만, 마치 나 혼자만 헛것을 본 것 같은 느낌에 빠진다. 다들 아무렇지 않은 상태로 돌아간 것 같은데, 나만 여전히 울상이다. 쓸데없는 것에 화를 냈다는 허무감 때문인가. 기분이 잡쳐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냥 다들 입 다물고 조용해졌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가장 이상한 건 A도, B도, 장롱통장도, 은행원도 아닌...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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