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에서 알약이 누락되고, 내 정신상태도 누락될 것 같다.


(사진은 내용과 전혀 관계없음.)


역시 망할 집구석은 되는 일이 없다더니, 집 안에서 뿐만 아니라 집 밖의 것들마저도 억까를 해대고 있다. 어차피 여기 '망초칼럼'은 아무 주제로 아무말 대잔치나 하는 곳이기 때문에, 가독성이 낮아도 상관없다. 그냥 읽고 싶은 사람은 읽고, 나갈 사람은 나가면 되는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망할 집구석은 되는 일이 없어서 좀 조용한가 싶어도 또 일이 터지곤 한다. 그게 무엇인지 잠시 부연설명을 해보기로 한다. 아버지가 몇년 전부터 복용하는 약이 있다. 그냥 약국·편의점에서 파는 상비약 같은게 아니라, 동네의원에서 처방전 받고 약국에서 조제받는 약을 말하는 것이다. 고혈압인지 당뇨인지 고지혈증인지... 알약의 형태도 다양하기 짝이 없다. 아무튼 이런 약들을 복용하는 이유가 결국은 건강 때문인데, 아버지는 하루에 한번씩 소주 한 병을 마시면서 약효를 상쇄시키고 있다. 내가 이래서 소주고 맥주고 절대 술을 안 마신다. 이런 일화 및 다른 이유들로 인해 주류에 대한 불쾌한 감정이 있으니까...

어쨌든 동네의원에서 진료받은 내역을 가지고, 두 달에 한번 꼴로 처방전을 받아서 약을 타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처방전과 약을 탈때는 아버지 본인이 아니라 어머니가 대리로 간다. 아버지가 일이 바빠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귀찮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거겠지... 아무튼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보통은 동네의원 바로 밑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조제하는데, 그 약국이 문을 닫았나보다. 리모델링 공사때문인지 폐업인지... 아무튼 그래서 어머니는 다른 약국에 처방전을 내고 약을 지었다고 한다. 그 다른 약국은 갑자기 생긴 뜨내기 약국이 아닌, 이미 몇십년 전부터 터잡고 장사했던 약국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한 두번은 여기서 약을 지었다고도 한다. 잘못 조제된 일도 없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신뢰성은 있는 약국이었다.

하지만 그 신뢰가 오늘부로 깨진 것 같다. 설명하기 좀 복잡한데, 아버지가 복용해야 할 여러 종류의 약들 중 하나가... 두 달치가 아닌 한 달치만 줬다고 한다. 그러니까 하루에 3알을 먹어야 한다면, 두 달치니까 3 x 60 = 180... 180알이다. 180알을 약국에서 줘야 하는데, 90알 밖에 안 줬다는 것이다. 딱 한 종류만 덜 줬고, 나머지 종류의 약들은 맞게 준 모양이다.

사실 잘못 지급될 징조는 있었다. 어머니가 낮에 약을 지으러 그 약국에 찾아갔는데, 해당 약국은 약 재료가 다 떨어졌는지 저녁에 다시 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어머니가 저녁에 다시 가서 약을 수령하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뒤 약의 개수를 확인해보니까, 위에서 말한 일부 종류의 알약이 누락된 걸 아버지가 확인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놓고보면,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약국의 잘못이다. 처방전을 잘못 읽었거나, 실수로 약을 누락했거나... 읽는 사람들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또... 처음에는 자꾸 약 개수를 확인하면서 한 달치가 없네 뭐네를 반복하다, 이윽고 어머니가 약국에서 약을 수령할때 개수를 똑바로 확인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어머니는 분명 확인 질문을 했다고 하였고, 약국에서는 맞다고 했다 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약국이야 당연히 맞다고 할것 아닌가라고 받아쳤는데... 솔직히 약국 안에서 약 봉투를 뜯고 알약 개수를 일일이 세어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게 하는게 오히려 이상한 모습이 아닌가. 아무튼 아버지는 그동안 여러번 약을 탔으면서 약 개수가 줄어들은 것도 확인을 못했냐면서 자꾸 어머니를 나무라기에만 급급했고, 정작 이 잘못을 저지른 약국에는 어머니 탓 정도로 비난하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약국에서 약을 타온 건 저녁이었기 때문에, 약 개수가 누락된 걸 확인한 뒤 다시 찾아갈 수도 없었다. 무슨 약국 문을 저녁 7시가 넘어가면 닫는 건지... 이러면 보통은 누락을 확인한 뒤, 내일 아침에 약국이 문을 열면 바로 가서 항의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끝냈어야 했다. 하지만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계속 반복되는 소리에... 이대로는 끝날 기미도 안 보이고, 또 대신해서 약을 타온 사람에게 수고했다는 말은 커녕 너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식으로 책임전가를 하니... 진절머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저번 칼럼의... 그 통장에 찍힌 이자와 세금때처럼 또 폭발해서 아버지와 언쟁을 하고 말았다. 객관적으로 봐도 저번보다는 더 분노의 게이지가 높았다. 이러다가 고혈압 약을 내가 먹게 생겼다.

일단 이 상황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일 아침 약국에 찾아가는 것으로 대충 소강상태가 되었다. 내일 아침이 되면 오늘 일이 약국의 실수일지 아닐 지 알게 될 것이다. 아무튼 화를 내고 고성을 지른 후에는 상당히 마음이 피곤해지고 지친다. 후폭풍으로 밀려오는 어색한 분위기도 거북하다. 하지만 이젠 보기만 하면서 마음 속에 스트레스를 쌓고 싶지 않다. 똑같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아무리 떠들어봤자 가정 내에서는 해결되지 않을 일을,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듣는 것도 지겹기만 하다. 그리고 자꾸 외부 요인때문에 가정 불화가 초래되는 것도 이젠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싸우는 장면들은 이젠 보기만 해도 싫다. 다들 좀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왜 이 집구석은 조용해지나 싶으면 자꾸만 일이 터진단 말인가. 그것도 가족 스스로가 일으킨 게 아닌, 외부 요인으로 말이다. 역시 망할 집구석은 되는 일이 없다. 이젠 약국의 실수로도 이 사단이 벌어진다. 탈출하고 싶지만 돈도 없고... 남은 가족들이 하도 걱정되어서 못 하겠다. 여러가지 의미로 말이다. 쓰레기 같은 약국. 빌어먹을 세상.

댓글 쓰기

다음 이전